1실감이 나지 않는다.세미프로 피아니스트로서의 활동을 앞두고 있던 나와그런 나에게 곡을 써주던 그가 홀연히 사라진 지 2주 째.
그는 사람들이 베풀어주는 호의가 싫다면서 나를 떠났다.어릴 적 부터 누구의 사랑 하나 제대로 받지 못하고 홀로 살아왔던 그였다.그렇기에 남이 베푸는 호의가 싫었다고 했다.
그리고 그는 그렇게 떠났다.나보다 다섯 살이나 어렸지만 뛰어난 능력과 작곡 실력으로 나에게 질 높은 곡을 써 주었던그는 그렇게 떠났다.
2 슬펐다.그와 함께했던 잠자리가 그립다.그는 나를 사랑하지 않았고, 나 역시 그를 사랑하지 않았다.그러나 어찌된 이유였는지, 습관적으로 잦은 관계를 가지게 되었다.마치 섹스 파트너처럼.
잠자리에서도 어깨 너머까지 기른 그의 머리칼 사이로 보이던 그의 얼굴에서 표정을 읽기는 매우 어려웠다.언제나 표정이 없었다.
그 것은 그가 곡을 쓸 때도 마찬가지였다.인간의 희노애락을 표현하는 작곡가였지만, 그의 곡에는 자신의 감정이 없었다.어디에선가 빌려온 감정, 그 것 뿐 이었다.
그러던 그가 나와의 잠자리에서, 나의 가슴에 파묻혀 울었던 적이 있다.나는 그때 그의 과거 이야기를 처음으로 들었다.
3 작년, 그가 19살이었을 때 잠자리에서 들었던 그 이야기.그렇게 비참한 이야기는 처음이었다.자세히 쓸 수도 없고, 쓰기도 싫다.
그 이후부터, 그는 나에게 의존하는 경향을 보였다. 누나로서 그런걸 받아 주었지만.그러나, 언제나 완벽함을 추구하던 그가 무너지는 모습을 보던 나는,그의 그런 모습을 거부하고, 피하고 싶었다.
싫었다. 어린 나이에 엘리트로 인정받아 언제나 완벽하던 그가 그렇게 변할 줄은.그러나 나는 그를 필요로 했다. 나는 그에게 가식적이라도 호의를 베풀었다.그도 눈치 챘을 것이다. 내가 베푸는 호의가 진심이 담겨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어쩌면 그런 호의가 싫어서 떠난 것 이었을까.
4 그리고 2주 전, 그가 결국 내 앞에서 모습을 감췄다.베푸는 호의가 싫다면서.어쩌면 그가 호의를 받는 것이 익숙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내 호의가 가식적이었기 때문이었을까.아니, 그 것이 맞을 것이다.
그렇다. 내 잘못이다.
그의 긴 머리가 그립다.그와의 사랑 없는 잠자리가 그립다.그가 피던 블랙데빌의 향이 그립다.
이상하다. 나는 그를 사랑하지 않고, 그도 나를 사랑하지 않았을텐데.
5 심심할 때 마다 그와 같이 했던 게임이 그립다.맥주잔을 기울이는 그의 모습이 그립다.나의 품에 안기던 그가 그립다.입에서 담배를 떼지 못 했지만, 담배 연기를 유독 싫어하는 내 앞에서는 절대 담배를 피지 않던 그의 모습이 그립다.그가 직접 쓴 악보가 그립다.그가 피아노를 치며 노래를 불러주던 때가 그립다.그가 모처럼만에 기타를 들고 노래를 불러주던 모습도 그립다.거울 앞에서 지휘를 연습하던 그의 모습이 그립다.내가 우리 집 피아노에 달아 둔 납을 하나하나씩 떼며, 손 망치려고 작정했냐고 나에게 소리치던 그의 모습이 그립다.
그리고, 그와의 의미 없는 키스가 가장 그립다.
6 그와 함께 녹음했던 피아노 곡.이미 한물 유행이 간 세미 클래식이었지만, 나는 그의 곡이 좋았고,하루 종일 엔지니어링을 하던 그의 모습도 좋았다.
사랑하지는 않았지만.
아니, 모르겠다. 사랑하는 걸까.모르겠어.
그를 보고싶어.
7 호프집에서, 다시 한 번 그와 함께 건배를 하고 싶어.그의 흉한 상처 자국이 있는 왼 손을 다시 한번 어루만져 주고 싶어.그가 가끔씩 TV에서 유아용 만화를 보면서 '나의 마음을 언록!' 이라는 대사를 따라하며 실실 웃는 모습이 보고싶어.내가 자취하는 곳에서 뒹굴거리던 그의 모습이 보고싶어.
..보고싶은데.이젠 다시 볼 수 없겠지.
8 어떻게 하면 다시 볼수 있는거야?그를 어떻게 하면 다시 볼 수 있어?도와줘. 도와줘. 제발. 도와줘. 도와줘. 도와줘요. 도와주세요. 부탁이에요. 제발.한번만 그를 만나면, 다시 그를 안고 그에게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어요.제발, 그를 만날 수 있게 도와주세요...나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에요.
9전격 영화화 결정!
10 더 이상 연락망은 없어?그 사람을 아는 사람을 알고 있다거나아니면 음악 쪽으로 알아볼 순 없나..
11이히히
12그의 머리칼을 내 멋대로 잘랐어뒷머리는 조금 짧지만 앞머리는 길게 남겨두었어.머리띠가 어울려서 씌워 주었어.
13 그가 많이 아파해
14붙잡아둘거야
15다시 그의 머리칼을 손봐주러 갈거야 안녕
Posted by 엘바렌스